공군 '불법촬영 수사'서 "많이 좋아했나 보지" 대놓고 2차가해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군인권센터 엿새 만 추가폭로…"군사경찰대, 피해자 성희롱"
"그런 놈 말고 나랑 놀지 그랬냐" "내가 얼굴은 더 낫지 않냐"
"사건 국방부 조사본부로 넘겨야…수사관계자 업무배제·엄벌"

군인권센터 부설 군 성폭력상담소는 8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서 벌어진 '불법촬영' 수사과정에서 2차 가해 등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발언하고 있는 김숙경 소장. 백담 수습기자

 

공군 전투비행단 안에서 벌어진 군사경찰의 '여군 불법촬영'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군 경찰이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상대로 2차 가해성 발언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 성폭력상담소(성폭력상담소)는 8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제19전투비행단(19비) 내 불법촬영 사건 초동수사 당시 사건을 수사하는 군사경찰이 피해자 조사를 한다며 도리어 성희롱을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군인권센터(센터)는 "지난달 초 19비 군사경찰 소속 남군 간부(하사)가 여군을 상대로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르다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성폭력상담소가 확보한 추가제보에 따르면, 19비 수사계장은 지난달 중순경 불법촬영 피해자들을 조사할 당시 "가해자가 널 많이 좋아했다더라. 많이 좋아해서 그랬나보지. 호의였겠지" 등 2차 가해성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그런 놈이랑 놀지 말고 차라리 나랑 놀지 그랬냐. 얼굴은 내가 더 괜찮지 않냐"라는 성희롱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계장은 가해자인 하사 편에 서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수사계장은 해당 하사를 두고 "걔도 불쌍한 애야", "가해자도 인권이 있어"라고 옹호했다. 또 "(가해자를) 교육시켰으니 좀 버텨보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조치할게"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회유하려 하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추가피해 사실을 알리려 하자 "너 얘 죽이려고 그러는구나"라며 협박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폭력상담소 김숙경 소장은 "피해자가 문제가 된 말들을 문제제기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수사계장의 계급인) 준위면 20~30년 일을 했을 텐데 문제제기가 쉽지 않다"며 "군이 여군을 직장동료로 보는 게 아니라 한낱 여자로 본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여군 숙소 내 '몰래카메라' 탐지를 요구했지만 묵살당하다 센터의 폭로 이후 당국이 이를 마지못해 수용했다고 전했다.

센터는 엿새 전 가해자 A 하사가 지난달 초 영내 여군 숙소에 무단침입해 여군들의 속옷과 신체를 불법촬영했다고 밝혔다. 군사경찰은 A 하사의 이동식 저장장치(USB)와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다량의 불법촬영물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USB에는 피해여군들의 동영상 파일이 이름별 폴더로 정리돼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 규모는 5~10명 남짓이다. 센터의 1차 폭로 이후 공군은 총장 지시에 따라 공군본부 중앙수사대로 이 사건을 이첩하고 지난 4일 A 하사를 구속했다.

성폭력상담소는 "충격적인 것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수사계장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었다는점"이라며 "수사계장뿐 아니라 19비 군사경찰대 소속 인원들은 '가해자가 불쌍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간 사건 처리가 왜 엉망으로 되었는지, 가해자가 구속도 되지 않고 부대를 활보하고 다녔는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사이 가해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군사경찰대에서 근무하며 부대 편의시설을 이용했고, 술도 마시러 다녔다고 한다. 수사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매우 컸던 까닭"이라며 "가해자는 군사경찰대 소속으로 부대원 이름을 검색해 주거지나 연락처, 차량번호 등을 얼마든지 조회할 수 있고 이를 악용한 성범죄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A 하사는 지난해에도 영내에서 여군을 대상으로 유사한 범죄행위를 하다 적발된 전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피해자들은 '주의 조치'를 요구했지만, 군사경찰대는 이를 대충 무마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소장은 "담이 커진 가해자가 이후 주거침입, 불법촬영 등의 추가범죄도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며 "19비 군사경찰대가 당시 매뉴얼에 따른 조치만 제대로 했어도 이후의 사건들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범죄를 막아야 할 군사경찰대가 도리어 성범죄를 확대 양산한 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불법촬영 피해자에는 여군뿐 아니라 복수의 민간인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는 이번 사건의 첫 피해자 조사가 지난 7일에서야 처음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그 전까지는 수사관이 전화로 '추가로 이야기할 부분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수사하는 시늉만 해왔다고 한다"며 "제보자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한 목소리로 공군 수사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기본적 성인지 감수성조차 없고, 사건의 심각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수사관들의 행태를 믿고 진술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사건 수사는 공군 중앙수사대가 아닌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진행해야 한다. 공군 군사경찰은 수사 주체가 아닌 수사대상"이라며 "19비 군사경찰대 수사 관계자들을 수사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수사를 통해 책임 여부를 가려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소장은 "추가제보를 통해 우리는 군에서 왜 성폭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부대 구성원 모두가 한뜻으로 가해자를 걱정하고 옹호하는 일에 전념하기 때문"이라며 "만연한 군성폭력 사건은 비(非)군사범죄 사건 수사와 재판을 민간으로 이양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석되기 어렵다. 지금이 바로 군에 오래도록 자리한 가해자 중심의 문법을 해체할 때"라고 덧붙였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